
“산의 본질을 잘 알기 위해서는 계곡으로 내려가야 하고, 평야의 본질을 잘 알기 위해서는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하듯이… 인민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여야 하고, 군주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민이어야 합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헌정사 중에서
<군주론>을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다름 아닌 마키아벨리가 메디치 가문에 바친 헌정사(편지)였다.
군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금은보화나 화려한 명마를 바치는 세속의 관행 앞에서, 마키아벨리는 오랜 세월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을 공부하고 치열한 현실 외교를 겪으며 터득한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바친다고 덤덤하게 고백한다. 낮은 골짜기에 서 본 사람만이 높은 산의 험준함을 알고, 높은 산에 올라본 사람만이 넓은 평야를 굽어볼 수 있다는 그 비유가 참 인상 깊었다.
<크루세이더 킹즈> 공략집 같았던 신선함, 그리고 시스템

정치철학의 무거운 고전이라기에 꽤나 난해하고 딱딱할 줄 알았는데, 막상 목차를 훑어보고 책장을 넘기다 보니 마치 중세 시뮬레이션 게임인 <크루세이더 킹즈(Crusader Kings)>의 실전 공략집을 읽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영지를 획득했을 때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용병을 쓸 때와 자국 군대를 쓸 때의 리스크는 무엇인가”, “어떤 위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과거 역사 속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조목조목 짚어주는 실전 매뉴얼 같았다.
생각해 보면 국가라는 것은 결국 거대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우리 현대인들은 누구나 회사나 사회라는 또 다른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매일 살아간다. 사람과 룰이 얽힌 거대한 조직 시스템을 어떻게 조율하고 통솔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고민을 해볼 수 있어 참 흥미로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평소 고민해 오던 조직 운영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무한한 관대함의 함정과 단호한 카리스마
나 역시 조직을 이끌 때 무조건적인 관대함과 마냥 착하기만 한 태도는 결국 조직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단호한 카리스마와 결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전에 프로젝트 회고 글에서도 뼈아픈 경험을 남긴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 진행 중 자신의 응답 코드 정의와 레이아웃이 무조건 맞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던 시니어가 있었다. 마감 기한은 코앞으로 다가오는데 시스템은 정상 동작하지 않고, 팀원들은 며칠 밤을 새우며 집에도 못 가고 피폐해져 가는데, 정작 본인은 화를 내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던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리더십의 자리에 있고 책임을 맡은 사람이라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될 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끊어내며 방향을 틀 줄 알아야 한다. 어설픈 체면이나 관대함으로 결정을 미루는 것이야말로 팀과 조직 전체에 가장 크고 잔인한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일이다.
크리스천의 카리스마: ‘악의’가 아닌 ‘존경’이 되는 선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냉혹한 현실주의를 읽으며, 크리스천으로서 늘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맴돌던 질문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무한한 관대함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수준과 태도로 카리스마를 행사해야 사람들이 이를 악의나 갑질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정한 존경과 존중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온유함, 그리고 거친 세상에서 시스템을 지켜내야 하는 리더의 단호함 사이의 균형.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잠정적인 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의 유불리를 떠나 ‘조직 전체의 잘됨’을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진정성이 보일 때다. 내 사리사욕이나 위세를 부리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팀원들과 시스템 전체를 살리기 위한 고뇌의 산물이라는 것이 전해져야 한다.
둘째, 더 나은 결정을 위해서라면 이전의 내 결정도 과감히 부정하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이다. 자존심 때문에 틀린 결정을 밀어붙이는 고집불통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내 허물도 기꺼이 인정하는 유연함이다.
셋째, 자신에게 불이익이 가더라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감당하는 모습이다. 공은 팀에게 돌리고, 리스크와 책임은 앞장서서 떠안는 용기다.
넷째, 결정만 딱 내려놓고 쏙 빠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현장에 남아 함께 뒹굴며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 태도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칼자루를 쥐어야 하는 순간이 올지라도, 그 칼끝이 사심이 아닌 공동체를 향한 책임감과 사랑에 닿아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카리스마를 폭력이 아닌 ‘존경’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치며: 500년 전의 책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
‘군주’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언뜻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제왕이나 정치가들에게나 필요한 낡은 고전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지금 우리 당장의 삶에 적용할 게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주 긴 역사 동안 인간의 본성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역사는 시대와 무대만 바꾼 채 늘 반복되기 때문이다.
500년 전 피렌체의 권력 투쟁이나, 오늘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회사와 조직이라는 시스템 안에서의 갈등과 생존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인간의 위선과 이기적인 본성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그 안에서 조직을 어떻게 지켜내고 이끌어야 하는지 날카롭게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꽤나 괜찮은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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