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1] <싯다르타> 후기, 헤르만 헤세 – 구원에 이르는 길

싯다르타 헤르만헤세 책 리뷰 후기

오늘은 헤르만 헤세의 저서인 싯다르타에 대해서 리뷰해보겠다.

헤르만 헤세에 대해

우선 헤르만 헤세는 독일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생활했다. 어렸을 때부터 선교사인 부모 밑에서 자라 기독교적인 엄격한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에대한 역효과였을까 그는 부모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고, 선교사의 꿈도 포기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크게 방황했다. 그의 작품들은 소설의 형식을 빗대고 있지만 삶의 전반 속의 번뇌를 서술한 자전적인 요소가 매우 많다. 대표저서로는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등이 있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85세에 사망하였다.

Ref : Hermann Hesse – Wikipedia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데미안>으로 크게 성공한 헤르만 헤세가 약 1년 반의 극심한 우울증 이후에 창작한 소설이다. <싯다르타>는 불교의 색채가 진한 책이다. 싯다르타가 인생을 살아가며 열반에 이르는 경험을 서술한 책이다. 작품을 쓰는 와중에 우울증을 겪어 출판까지 약 3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책인데 책의 내용을 고찰해보면 왜 우울증을 겪었을까 짐작할 수 있다.

줄거리

싯다르타라는 인도의 구도자가 출가하여 고행을 나선다. 고타마라는 성인을 만난 싯다르타는 결국 타인에게서는 절대로 도를 깨우칠 수 없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통감한다. 그러면서 싯다르타는 속세에서 그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긴 속세에서의 세월을 통해 부호가 되고, 연인과 사랑도 한 싯다르타는 그 경험을 양분삼아 성장하여 이전에 묻어두었던 구도에 다시 설렘을 느낀다. 그렇게 다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는 싯다르타는 숨겨진 성인인 뱃사공을 발견하고는 함께 살아가며 이 세상 만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된다. 우연히 마주한 자신의 아들을 보며 고뇌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비로소 싯다르타는 도는 오롯이 자신에게서부터 얻어진자는 사실을 알고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

주제

필자가 생각하는 <싯다르타>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나’를 구원 할 수 있는 깨달음은 오로지 ‘나’의 경험으로 획득된다. 그리고 세상의 만물 속에서 구원에 대한 속성을 배울 수 있다. 숭고하지 않은 평범한 삶 속에서도 각자 나름의 구원이 있다. 이 구원은 절대 대물림 될 수 없다.

감상평

<싯다르타>는 지극히 종교적인 소설이다.
사실 헤르만 헤세는 평생을 자신의 존재, 신앙과 구원을 고민하며 살아간 사람으로 그의 모든 저서가 본인의 고민을 과정을 주인공에게 투영하여 고백하는 고백서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기독교인이다. 헤르만 헤세의 가정환경 만큼의 엄격한 분위기는 아니었어도 열성적인 부모님을 따라 자아와 가치판단 이전부터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래서 성년이 된 이후에 내 존재와 구원에 대해 우울증(진단을 받은 적은 없으나)에 깊이 빠질만큼 절망에 빠진 채로 두 해가 넘는 기간동안 방황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의 일생에 대한 큰 공감과 이해를 갖는다. 그 라포의 안경을 쓰고 헤세의 글을 바라보면 ‘구원’에 대해 몸부림친 그의 처절하고 숭고한 절망과 번뇌가 느껴진다.

고타마 싯다르타

그 절망과 번뇌에 대한 해답은 많은 성인들을 포함한 철학자, 종교인 등이 이미 내놓았지만 이를 열심히 찾아보아도 다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많은 절망과 번뇌를 오롯이 경험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며, 치열하게 고민하여 깨달아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이를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가 고타마와 만나는 순간을 통해 표현했다.

이런 고민들을 늘어놓다보면 숭고한 ‘나’ 자신에 도취되어 평범한 삶을 사는 자들을 무시하거나 불쌍히 여기게 된다. ‘이렇게 고민하는 나 조차도 구원에 대해 아주 희미한 확신이 드는데, 평펌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겠구나! 구원받지 못할 그들이 불쌍해!’로 생각의 흐름이 흐르기 마련이다. <싯다르타>에서 헤르만 헤세는 이를 경계하고 그들 또한 나와 같은 존재라는 깨달음을 인식하는 모습을 싯다르타가 속세에서 살아가며 만나는 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런 깨달음 뒤에는 나의 초라함과 작음이 겸손이 되며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서도 신의 섭리를 느낄 수 있고, 아픈 감정 속에서도 신의 섭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싯다르타가 뱃사공과 함께 살며 경험하는 과정이 이와 같다.

이 절망과 번뇌가 가득한 구원을 깨닫는 과정을 겪고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고통을 피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된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구원을 열심히 전파하려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도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강압적인 훈육을 해보지만 결국 반복될 뿐이다. 헤세는 싯다르타가 자신의 아들을 훈육하는 모습을 통해 이를 말한다.

헤르만 헤세가 구원을 깨달아 평안에 이르렀기를.

내가 구원을 깨달아 평안에 이르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깨달아 평안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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